친구와 저녁을 먹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지하철 맨 끝자리에 나란히 앉았고, 스마트폰을 보면서 대화하고 있느라 주변에 누가 서있는지 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그때 내 옆 쪽에 자주 열리지 않는 문 근처에 서있던 어떤 사람이 말했다.
"젊은것들이 앉아있네"
나한테 하는 얘긴가? 긴가민가해서 옆에 앉아있는 친구에게 속삭이듯 '너도 들었어?'라고 물었다. 친구는 못 들었다. 이후 그 말을 했던 사람을 의식하지 않은 척 예의 주시했다. 그 말을 내뱉던 어떤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혼자가 아니었고 한 분이 더 계셨다. 두 분이서 계속 대화를 주고받는다. 대화는 아까 내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던 맥락과 비슷했다. 그때 할아버지가 한 마디 더 내뱉는다
"어이. 젊은이"
이번에는 확실하게 나를 불렀다. 일부러 못 들은 척 친구와 대화하며 딴청 피웠다. 일단 대답하면 싸울 것 같았다. 아까 그 말을 들은 이상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이 들었다. '자리를 양보해줘야 되나?', '아니지. 저런 할아버지한테 절대 양보하면 안 되지', '내 몸을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한바탕 싸워야 하나?' 다행히 할아버지는 나를 더 이상 부르지도 궁시렁거리지도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주변 20~30대 또래 중 노인을 혐오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아졌다. '극혐', '혐오'라는 표현이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들을 만큼 자주 쓰는 단어가 돼버렸다. 물론 청년들만 노인을 혐오하는 건 아니다. 반대로 노인들도 양보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10년 넘게 지하철을 타면서 지나간 시간만큼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양보가 당연시되던 예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이는 순간 자리를 비켜드리기 바빴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 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도 노약자석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심지어 임산부조차 노약자석이 비어있어도 앉기를 주저한다. 여러 번 고민하고, 옆에서 앉으라고 강요하다시피 앉혀야 겨우 앉는 신세다.
대한민국 노인은 외롭다.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친근한 호칭으로 불러주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젊은 사람과 노인이 대화를 하고 있다면 그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이 어떻더라 같은 교양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한 쪽의 무례함으로 싸우고 있을 확률이 높다. 서로가 남인 노인과 청년들이 대화할 수 있는 장소가 지하철 말고 또 있는가. 세대가 단절된 느낌이다. 실타래가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최근에 책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을 읽었다. 평균 나이 72세, 우리가 좋아하는 어른들의 말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이 책에서 말하는 어른들이라고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어른(노인)과는 다를까? 지하철에서 '어이 젊은이'라도 부르던 할아버지 때문인지 읽기 전부터 궁금증이 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달랐다. 다른 정도가 아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오히려 나보다 더 젊게 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92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디자이너 노라노님과 100세 철학자 김형석님의 스토리는 내 삶에서 그동안 천천히 쌓아온 '노인'이 주는 이미지를 통째로 흔들었다. 가볍게 읽으려고 샀던 책에서 마치 바닥에 떨어진 알밤처럼 문장을 노트에 주워담기 바빴다.
그리고 독일에서 화가로 일하고 있는 노은님의 대답이 이 책을 덮고 다른 책을 읽는 와중에도 불현듯 떠올랐다
우주의 정원사로 사는 게 행복한가요?
노은님 | 행복이 뭔가요? 배탈 났는데 화장실에 들어가면 행복하고 못 들어가면 불행해요. 막상 나오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죠. 행복은 지나가는 감정이에요.
그렇다면 어떤 감정이 중요하죠?
노은님 | 편안함과 감사함이죠. 눈떴는데 아직도 하루가 있으면 감사한 거예요. 어떤 일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편한 세상이 돼요. 매일매일 벌어지는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수고스럽겠지만 그냥 받아들이세요. 날씨처럼요. 비 오고 바람 분다고 슬퍼하지 말고 해가 뜨겁다고 화내지 말고.(웃음)
"그냥 받아들이세요. 날씨처럼요."
책 <잡스-에디터>에서 "좋아하려고 노력해봤느냐"라고 마치 나를 지목해서 말하는 느낌이 들었던 문장처럼 뜨끔했다. 비 오고 바람 분다고 슬퍼하고, 해가 뜨겁다고 화내기 바빴는데. 아니. 그 마저도 짜증이라는 감정로 퉁 쳤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해야할 때도 있지만, 때론 웃어넘기는 지혜도 필요하다. 책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을 읽기 전까지는 누군가 나를 공격하면 대처하기 위해 책을 해치웠다면, 이 책에서 화가 노은님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웃어넘기는 지혜'를 한 수 배운 느낌이다. 오늘 유독 날씨가 좋다.
친구와 저녁을 먹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가는 길이었다. 우리는 지하철 맨 끝자리에 나란히 앉았고, 스마트폰을 보면서 대화하고 있느라 주변에 누가 서있는지 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그때 내 옆 쪽에 자주 열리지 않는 문 근처에 서있던 어떤 사람이 말했다.
"젊은것들이 앉아있네"
나한테 하는 얘긴가? 긴가민가해서 옆에 앉아있는 친구에게 속삭이듯 '너도 들었어?'라고 물었다. 친구는 못 들었다. 이후 그 말을 했던 사람을 의식하지 않은 척 예의 주시했다. 그 말을 내뱉던 어떤 사람은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혼자가 아니었고 한 분이 더 계셨다. 두 분이서 계속 대화를 주고받는다. 대화는 아까 내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던 맥락과 비슷했다. 그때 할아버지가 한 마디 더 내뱉는다
"어이. 젊은이"
이번에는 확실하게 나를 불렀다. 일부러 못 들은 척 친구와 대화하며 딴청 피웠다. 일단 대답하면 싸울 것 같았다. 아까 그 말을 들은 이상 나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이 들었다. '자리를 양보해줘야 되나?', '아니지. 저런 할아버지한테 절대 양보하면 안 되지', '내 몸을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한바탕 싸워야 하나?' 다행히 할아버지는 나를 더 이상 부르지도 궁시렁거리지도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주변 20~30대 또래 중 노인을 혐오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아졌다. '극혐', '혐오'라는 표현이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들을 만큼 자주 쓰는 단어가 돼버렸다. 물론 청년들만 노인을 혐오하는 건 아니다. 반대로 노인들도 양보하지 않는 젊은이들을 버르장머리가 없다며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10년 넘게 지하철을 타면서 지나간 시간만큼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양보가 당연시되던 예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이는 순간 자리를 비켜드리기 바빴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 조차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도 노약자석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심지어 임산부조차 노약자석이 비어있어도 앉기를 주저한다. 여러 번 고민하고, 옆에서 앉으라고 강요하다시피 앉혀야 겨우 앉는 신세다.
대한민국 노인은 외롭다.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할아버지', '할머니'라는 친근한 호칭으로 불러주지 않는다. 지하철에서 젊은 사람과 노인이 대화를 하고 있다면 그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이 어떻더라 같은 교양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한 쪽의 무례함으로 싸우고 있을 확률이 높다. 서로가 남인 노인과 청년들이 대화할 수 있는 장소가 지하철 말고 또 있는가. 세대가 단절된 느낌이다. 실타래가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최근에 책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을 읽었다. 평균 나이 72세, 우리가 좋아하는 어른들의 말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이 책에서 말하는 어른들이라고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어른(노인)과는 다를까? 지하철에서 '어이 젊은이'라도 부르던 할아버지 때문인지 읽기 전부터 궁금증이 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달랐다. 다른 정도가 아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오히려 나보다 더 젊게 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92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디자이너 노라노님과 100세 철학자 김형석님의 스토리는 내 삶에서 그동안 천천히 쌓아온 '노인'이 주는 이미지를 통째로 흔들었다. 가볍게 읽으려고 샀던 책에서 마치 바닥에 떨어진 알밤처럼 문장을 노트에 주워담기 바빴다.
그리고 독일에서 화가로 일하고 있는 노은님의 대답이 이 책을 덮고 다른 책을 읽는 와중에도 불현듯 떠올랐다
우주의 정원사로 사는 게 행복한가요?
노은님 | 행복이 뭔가요? 배탈 났는데 화장실에 들어가면 행복하고 못 들어가면 불행해요. 막상 나오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죠. 행복은 지나가는 감정이에요.
그렇다면 어떤 감정이 중요하죠?
노은님 | 편안함과 감사함이죠. 눈떴는데 아직도 하루가 있으면 감사한 거예요. 어떤 일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편한 세상이 돼요. 매일매일 벌어지는 좋은 일도 안 좋은 일도 수고스럽겠지만 그냥 받아들이세요. 날씨처럼요. 비 오고 바람 분다고 슬퍼하지 말고 해가 뜨겁다고 화내지 말고.(웃음)
"그냥 받아들이세요. 날씨처럼요."
책 <잡스-에디터>에서 "좋아하려고 노력해봤느냐"라고 마치 나를 지목해서 말하는 느낌이 들었던 문장처럼 뜨끔했다. 비 오고 바람 분다고 슬퍼하고, 해가 뜨겁다고 화내기 바빴는데. 아니. 그 마저도 짜증이라는 감정로 퉁 쳤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해야할 때도 있지만, 때론 웃어넘기는 지혜도 필요하다. 책 <자기 인생의 철학자들>을 읽기 전까지는 누군가 나를 공격하면 대처하기 위해 책을 해치웠다면, 이 책에서 화가 노은님을 만나고 나서부터는 '웃어넘기는 지혜'를 한 수 배운 느낌이다. 오늘 유독 날씨가 좋다.